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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신자유주의 시대 사회운동 테제

1. 현대사회는 신자유주의 사회다. 신자유주의를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 뿌리내렸다.

2.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은 모든 개인의 기업화다. 무한경쟁은 개인의 기업화에서 파생되는 신자유주의의 2차적 본질이다.

3. 2의 결과로,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케인즈주의 시대에 했던 동일성에 기초한 조합주의 운동은 불가능하다. 개인의 모두 다르고 서로 경쟁한다. "경쟁"이 아니라 "모두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다.

4. 남미는 한국보다 30여년 일찍 신자유주의를 시작했다. 어떤 브라질리안 트위터 이용자가 룰라가 고전하는 것은 그가 정치를 못 해서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아서라는 트윗을 했다. 그들은 일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플루언서 지망생이거나 사업가 지망생이거나 은퇴 지망생일 뿐이다.

5. 브라질 우파는 신자유주의 보급을 통해 계급을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무한경쟁과 도태로 고통받는 개인들에게는 복음주의 번영신학으로 위로를 제공하며 성장했다. (복음주의 번영신학이야말로 인민의 아편이다. 복음주의 번영신학은 개인의 실패는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져서, 성공은 믿음을 가져서라고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아무튼 개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니까 진통은 될 것이다).

6.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래로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에 대한 많은 담론이 나왔지만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국 역시 브라질처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하고, 사람들의 일상에 침투해 있다. 브라질처럼 오순절 운동이 강하지는 않지만, 오순절 계열이 아닌 개신교 역시 복음주의와 성령운동과 다르지 않게 행동한다. 강남 중심의 대형교회는 박정희 시기 경제발전을 거치면서 번영신학의 생산자이자 스피커가 되었다.

7. 룰라는 이재명보다 더 좌파적이고 대중의 지지도 훨씬 강하다. 그런데도 고전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좌파에게는 크게 걱정해야 할 일이다. 선거는 더 이상 정책에 대한 지지/반대나 경제적 요인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8. 브라질은 한국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남미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또 고강도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곳이다. 브라질에서 복음주의 번영신학이 번성하는 것은 미국의 지원 때문임과 동시에, 복음주의 자체가 신자유주의와 친화성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 좌파는 남미를 보며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9. (낸시 프레이저가 분석했듯이) 신자유주의의 발전기에 페미니즘은 신자유주의와 의도치 않은 동맹을 맺었다. 페미니즘 뿐 아니라 다양한 해방운동이 신자유주의와 어쩔 수 없는 친화성을 가졌다.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사상이어서일 수도 있고 해방운동의 특성상 개인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 친화성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것은 페미니즘의 잘못은 아니다. 그냥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뿐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 발달을 촉진시킨 것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잘못은 아니다.

10. 중요한 것은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남녀 노동자는 계급 안에서 하나라고 주장할 수 없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와 경공업 생산진 노동자와 교사와 택배기사와 아이돌이, 하이닉스 정규직과 삼성 하청 노동자가 같은 노동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모든 정체성 정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 수 만큼의 여성의 처지와 사람 수 만큼의 노동계급의 상태가 있다. 한 사람 안에도 다중적 정체성이 있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정체성이 더 본질적이라고 정해줄 수 없다.

11.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정체성-계급-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할 수 없다면 가치의 사슬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수밖에 없다. 보수 우파는 민주당-차별금지법-페미니즘-성해방운동이라는 가상의 가치사슬을 만들고 자신들을 그 반대에 위치시킴으로써 정치적 보수(국민의힘)-(보수)개신교-(안티페미)남성-문화적 보수를 한 사슬로 엮고 있다. 좌파는 아직 이러한 사슬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무페와 라클라우 등이 주장하는 좌파 포퓰리즘의 핵심이다. 현실은 포퓰리즘마저 우파가 앞서 있다)

12. 같은 차원에서 경제성장, 지역균형발전, 일자리정책 등은 모두 중요하지만 그것은 핵심이 아니다. 국가 단위의 경제 문제는 오히려 그 규모로 인해 유권자들에게 와닿지 않는다. 경제가 파탄나거나 갑작스러운 호황이 지속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유권자는 경제 문제 따로, 정체성 따로, 투표 따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많은 유권자는 경제를 제대로 분석해 투표에 반영하지 않는다. 실제로 부동산은 민주당 정부에서 훨씬 급격하게 오르지만 부동산 소유주들은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으며 민주당이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13. 좌파는 경제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직, 동원 기제를 찾아야 한다. 동시에 계급환원론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하나의 핵심적 요소를 찾아 거기서부터 혁명을 시작하려는 사고와 작별해야 한다. '하나'가 노동조합이든 좌파정당이든, 경제정책, 민주주의, 심지어 젠더나 기후이든, 이 중에서 두세 개를 결합한 것이든, 그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로부터 변화의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14. 우파의 가치사슬도 어떠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비전은 없다. 오히려 개신교가 꿈꾸는 세상과 안티페미 남성이 꿈꾸는 세상은 다르다. 그럼에도 그들은 동맹을 맺는다. 그것이 가치사슬의 힘이다. 그렇다면 좌파 역시 인식의 합일 없이도, 현상태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가치사슬을 만들 수 있다. '반독재'는 한때 그러한 가치사슬이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종류의 가치사슬과 동맹이 필요하다.

15. 대다수의 진보-좌파가 옛날식 운동방식(동일성에 기초한 운동과 정치, 중심모순에 대한 집착-중심모순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계급환원론, 경제주의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전과 이후는 다른 세계다. 다른 세계에서는 다른 운동방식이 요구된다.

16.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의 희망'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슬로건으로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한 쪽에 '일하는 사람'과 '서민'을, 반대쪽에 '부자'를 놓고 복지에 반대하는 사람을 적으로 설정하는 포퓰리즘 화법이다. 이후 한국 좌파는 이보다 더 선명한 전선을 치지 못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을 2026년에 맞게 업데이트해야 한다. 업데이트의 방향은 경제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문화주의나 정체성 정치 쪽일 수도 있다.

17. 지금 좌파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정치나 경제에 대한 개입 뿐 아니라 문화전쟁이다. 민주당과도 보수정치와도 다른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18. 우파는 그람시로부터 배웠다. '문화맑시즘'같은 해괴한 조어는 우습지만, 그들이 그람시와 좌파 문화운동, 정체성 정치에서 배운 것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작 좌파 자신들이 그람시와 유럽 좌파 학자들의 유산을 등한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역량(경제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은 탈산업화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19. 21세기는 미디어의 시대다. 좌파 운동이 승리하려면 미디어에서부터 승리해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대안적 문화와 가치를 퍼뜨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가치사슬을 연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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