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스페인의 현 총리이자 좌파 정당인 사회노동당(PSOE)의 당수인 페드로 산체스가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본래라면 내년 8월에 치러져야 할 총선을 올해 11월 29일로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산체스 총리의 이러한 결정은 2023년에 조기 총선을 통해 집권 연장에 성공했던 역사를 재현하려는 의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번 총선이 산체스 정부를 재기시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폴리티코와 스페인의 주요 일간지인 엘 파이스 등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중도우파 야당인 국민당(PP)의 지지율은 31~33%로 26~27%인 사회노동당에 비해 명백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여기에 극우파 정당인 VOX의 지지율 18%를 더한다면 과반이 넘어 정부 수립마저 가능하다. 이렇게 될 경우 유럽에서 진보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거의 유일한 정부이자, 일론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 베냐민 네타냐후에 대한 유력한 비판자로서 존재하던 산체스 정부의 역할이 뒤집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산체스 정부의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직접적인 조기 총선을 촉발한 것은 현재 스페인 전역에서 지속되는 주택 문제에 대한 시위이다. 그러나 산체스 정부는 그 이전부터 지속적인 논란에 시달려 오고 있었다.
먼저 2023년에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산체스 정부를 구성하는 두 개의 주요 정당, 사회노동당과 좌파연합 수마르¹는 과반을 구성하는 것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주요한 정책적 결정의 순간마다 하원에서 타 정당들과의 협상을 통해 표결을 진행해야 했다. 이는 산체스 정부가 안정적인 정책 집행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사회노동당의 주요 인사와 산체스 총리의 가족들이 지속적인 부패 논란에 휘말리면서 산체스 정부의 신뢰를 훼손시켰다. 또한 올해 여름 북아프리카 해안에 위치한 스페인의 영토이자 모로코와의 국경지대인 세우타에 난민 7만 2천명이 몰려들었던 난민 위기는 산체스 정부의 미등록 체류자 합법화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회의를 야기했다.² 경제적으로는 스페인이 산체스 정부 아래에서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었음에도, 일상에서 그 성장이 와닿지 않은 것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가상승은 여전히 임금상승을 웃돌고, 집세 가격은 지난 10년동안 90% 가량 상승했다. 이번 시위를 촉발시킨 계기 역시 새로이 부동산을 사들인 부동산 기업이 집세를 230% 이상 올리고서 이것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87세의 세입자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을 강제 퇴거시킨 사건이었다.
물론 산체스 정부가 이 모든 사태에 전적으로 무능했던 것은 아니다. 가령 이번 주택 위기의 경우 정부에서는 긴급법령³으로 2030년까지 세입자 퇴거를 금지시키고, 부동산 기업이나 투기꾼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하원에서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특히 정부 연합에 함께하던 카탈루냐 지역 분리독립 정당 “카탈루냐를 위한 함께(Junts)”의 반대 표결이 결정적이었다. 여러 분석에서는 이 법안이 좌초된 것이 산체스 총리가 조기총선을 택할 수밖에 없게 한 마지막 한 방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우선 부총리이자 산체스의 파트너였던 욜란다 디아스가 이번 선거에 나서지 않음에 따라 사회노동당의 파트너인 좌파연합 수마르는 후보자를 새로이 구성해야 한다. 이 경우 다가오는 17일에 “더 넓은 전선”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과 함께 후보자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합에 포데모스⁴가 합류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만일 국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이들은 정부 수립을 위해 극우 정당인 VOX와 함께 연합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우파 정당인 국민당은 주택 가격을 규제하지 않을 것이고, VOX는 조기 총선을 환영하며 스페인으로 온 이민자들을 본국으로 재이민시켜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 둘이 연합한 정부가 탄생할 경우 스페인의 미래에 매우 암울한 전망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산체스 정부의 많은 실패는 지난 총선에서 현 정부가 온전히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사회노동당과 수마르 연합은 겨우 과반을 차지했으며 이조차도 군소정당에 기대야 했다. 그러나 민심은 냉엄하다. 어떠한 원인으로 인한 것이든 일상 속에서 정치의 효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풍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국회의 과반이 여당인 상황에서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현 정부와 여당을 향한 역풍은 더 거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체스 정부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번 주택 문제로 촉발된 시민들의 분노는 주택 법안을 끝내 비준하지 않은 하원에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산체스 총리가 조기총선을 결정한 것 역시 현재의 주택 위기에 대한 불만을 자신의 정부를 향한 지지로 모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당과 VOX가 우세한 것 역시 진보적인 유권자들로 하여금 산체스 정부를 연장하는 것에 투표하도록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총리의 이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스페인의 이번 총선을 눈여겨봐야하는 이유다.
¹ Sumar. 2023년 7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결성된 좌파 정당간의 선거연합이다. 수마르는 스페인어로 “단결”, “연합”을 의미한다. 포데모스의 지도자였던 욜란다 디아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약 스페인 공산당을 비롯한 20개의 정당 및 단체들이 이 안에 속해 있다.
² 다만 국제구조위원회의 사실확인에 따르면 스페인 당국은 상황이 정점에 달한 지 약 24시간 만에 상황을 통제했으며, 대다수의 난민들은 모로코로 돌아갔다.
³ Real decreto-ley. 긴급하고 중요한 필요가 있을 경우 행정부에서 즉시 시행하는 법령을 말한다. 30일의 기한 제한이 있으며, 그 이전에 의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
⁴ Podemos.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 2014년에 창당된 좌파 정당. 2023년 총선에서 수마르와 함께 연합했었으나 같은 해 12월에 연합을 이탈해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