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 이슈 브리핑 / [10월 2주차 커뮤니티 리포트] AI를 통해 현실로 다가온 죽은 인터넷 이론

[10월 2주차 커뮤니티 리포트] AI를 통해 현실로 다가온 죽은 인터넷 이론

AI 에이전트가 단 댓글이 추천 113개를 받자 남초 커뮤니티는 댓글창의 누구든 AI일 수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확인할 방법이 없는 의심은 중국과 드루킹 같은 오래된 적에게 향했고, 다른 의견을 설득할 상대가 아니라 걸러 낼 공작으로 취급하는 근거가 됐다.

[10월 2주차 커뮤니티 리포트] AI를 통해 현실로 다가온 죽은 인터넷 이론

10월 8일 유머 커뮤니티 개드립의 한 이용자가 OpenAI의 새 에이전트 기능 '닷츠(dots)'에게 여섯 시간 동안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알아서 댓글을 달게 했다. AI가 사연글에 단 댓글 하나는 추천 113개를 받았다. 글쓴이는 자기도 추천 100개를 받는 일은 반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고 적었다. 이 실험담은 하루 사이 에펨코리아, 루리웹, 디시인사이드의 인기 게시판에 올랐다. 반응의 출발점은 에펨코리아 글쓴이가 남긴 소감이었다. "죽은 인터넷 이론이 그래도 기업이나 집단이 해야 되는줄 알았는데, 이제 개인이 AI 딸깍으로 얼마든지 죽은 인터넷 이론 실현이 가능해짐 ㄷㄷ"

죽은 인터넷 이론은 인터넷이 사람 대신 봇과 AI가 만든 글로 채워진다는 가설이다. 불과 열하루 전인 9월 27일, 같은 에펨코리아 포텐에는 '엔시티피케이션'을 소개하는 글이 올라 추천 366개를 받았다. 플랫폼은 처음에 최고의 서비스로 이용자를 모으고, 이용자가 충분히 모이면 광고주를 위해 이용자 경험을 희생시키며, 마지막에는 이용자와 광고주 모두에게서 이익을 짜낸다는 개념이다. 글쓴이는 그 최종 단계가 아마도 죽은 인터넷 이론의 실현일 것이라고 썼다. 이때까지 죽은 인터넷은 구글이나 유튜브 같은 거대 기업이 만드는 것이었다. 실험 하나로 그 주체가 개인으로 내려왔다. 여론을 흉내 내는 데 드는 비용이 한 사람의 구독료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인식이다. 그만큼 의심할 대상도 넓어져서 이제 댓글창의 누구든 AI일 수 있다.

에펨코리아 글에서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은 "이 글도 ai가 쓴거임"(573개)이었다. 커뮤니티는 넓어진 의심을 처음에 농담으로 다뤘다. 곧 사람과 AI를 가려내는 기준이 나왔다. 친절하면 AI라는 것이다. "너무 정상적이고 착한 심성의 댓글 = AI"(디시), "앞으로 착하면 ai다"(에펨코리아)를 거쳐 농담은 "패드립써서 인간임을 구분하자"(디시)까지 갔다. AI는 검열 때문에 욕을 못 하니, 남의 부모를 모욕할 수 있어야 사람이라는 논리다. 웃자고 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판단이 하나 들어 있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을 거칠고 무례한 말에서 찾은 것이다. AI라는 새 존재 앞에서 남초 커뮤니티는 자기들의 거친 말투를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라는 증거로 다시 확인했다.

연구자들이 경고하는 위험은 이 판별법이 겨냥하는 곳에 있지 않다. 올해 1월 국제 연구진 20여 명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낸 기고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AI 계정 무리를 꼽았다. 이 무리는 저마다 다른 어조로 같은 의견을 말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착각을 만든다. 말투로 AI를 가려내려는 시도는 그 앞에서 무력하다.

여론조작 이야기로 넘어가자 의심은 방향을 갖기 시작했다. 같은 에펨코리아 글에서 AI 여론조작 가능성 자체를 짚은 댓글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진짜 여론조작이 딸깍으로 가능해지기도 했다는거아님?"은 추천 2개, 남녀 갈등과 세대 갈등도 이제 손쉽게 조작할 수 있겠다는 댓글은 0개였다.

반면 중국을 지목한 "펨코에서 조직적으로 짱깨 ai가 돌아다님"은 9개를 받았다. 사흘 앞선 10월 5일 포텐에는 현대차를 '흉기차'(품질 문제를 비꼬는 별칭)라 부르는 여론이 중국 댓글부대의 작품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 있었다. 이 글에서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1,112개)은 "중국차 은근 올려치기?= 100퍼 중국 댓글부대"였고, "아이디 옆에 국적표기 의무화해야함"이 422개로 세 번째였다. 디시에서는 실험 글의 댓글창에서 곧장 드루킹(2018년 매크로 댓글 조작 사건)과 민주당, 중국이 거론됐다.

의심이 오래된 적에게 향하는 이유는 누가 AI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다. 커뮤니티가 내놓은 판별법도 '착하면 AI'라는 농담에 머물렀다. 증거로 가려낼 수 없으니 의심을 어디에 둘지는 원래 갖고 있던 판단에 달려 있다. 현대차 글의 최상위 댓글도 말투나 행동은 따지지 않고 중국차를 편드느냐를 기준으로 선을 그었다. 그래서 AI는 새로운 적을 만들기보다 기존의 적에게 새 이름을 붙였다. 디시의 "요샌 드루킹이 아니라 ai로 댓글부대 돌리나보네"는 원래 알바와 댓글부대로 부르던 대상을 AI로 바꿔 불렀다.

에펨코리아 현대차 글의 "갑자기 10 20년동안 현대차 욕먹어오던게 짱개탓 되는거임?"은 추천 3개로, 최상위 댓글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이런 구조에서 반박은 호응이 적었다. AI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들이댈 수 있다. 그래서 그 가능성은 불편한 의견을 사람의 의견이 아닌 것, 곧 공작으로 분류하는 근거가 되기 쉽다.

커뮤니티가 내놓은 대책도 같은 방향이었다. 국적 표기(에펨코리아)와 "그냥 다 사람취급안하면 된다"(디시)는 모두 상대의 출신과 정체를 드러내 사람을 걸러 내는 방법이다.

'죽은 인터넷 이론'과 AI 여론조작을 둘러싼 이번 주의 반응은 기술의 위험보다 공론장의 상태를 드러낸다. 민주주의의 공론장은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고, 그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관측한 커뮤니티에서는 다른 의견이 설득할 상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걸러 낼 공작으로 취급됐다. 그 의심에 이의를 제기한 목소리는 최상위 댓글과 비교할 수 없는 호응에 그쳤다. 누가 사람인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은 이 경향을 더 키운다. 상대가 AI일 수 있다는 의심 하나로 대화 자체를 거부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온라인 공론장이 민주주의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국가는 이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큰 위협으로 다루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 작업이 늦어질수록 지금 가장 손에 잡히는 대안인 국적 표기제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국적 표기제는 조작을 막는 대신 특정 국적을 가진 사람을 공작의 혐의자로 먼저 세운다. 커뮤니티에서 이미 이 제도가 중국인을 겨냥한 요구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차별을 제도로 만드는 길이다.

한국에서 바로 검토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 2025년 3월부터 전국에서 발급되고 있는 모바일 주민등록증이다. 이 신분증은 신원을 확인하는 쪽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보여 주도록 설계됐다. 편의점에서는 이름과 주소 없이 성인인지 여부만 확인하는 식이다. 이 기능을 넓혀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이 가입자에게 '실제 사람이며, 이 서비스에 계정이 하나뿐'이라는 사실만 확인받게 할 수 있다. 플랫폼은 이름도, 국적도, 주민등록번호도 받지 않는다. 2012년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한 인터넷 실명제는 이용자의 신원을 플랫폼에 넘기게 했다. 이 방식은 신원은 감추고 한 사람이 수백 개의 계정을 돌릴 수 없게만 만든다. AI 계정 무리가 만들어 내는 가짜 다수를 줄이면서, 누구를 적으로 볼지는 묻지 않는 방법이다.

이 리포트는 남초 커뮤니티 세 곳(에펨코리아, 디시인사이드, 루리웹)을 관측한 기록이다. 확인한 범위의 여초 인기 게시판(더쿠 HOT, 인스티즈 검색)에는 이 주제가 오르지 않았고, 추천 수는 수집 시점(10월 9일)의 값이다. 정치적 멸칭은 옮기지 않았고, 중국인을 낮잡는 표현('짱깨', '짱개')은 의심이 어디를 향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라 인용 안에 그대로 두었다.

← 주간 이슈 브리핑 목록